티스토리 뷰

왜 나를, 이응준.

거인의 눈동자 2018. 3. 5. 01:22

약속하지 않았지만 그가 나타났다. 나는 매일 밤 외지고 허름한 술집에서 이름밖에는 모르는 사람들과 히히덕거렸다. 그를 잊으며 없는 것들을 있다고 우겼다. 그는 누구인가? 펄럭이는 파란 물고기의 깃발 같은 아가미. 어제 버린 애인의 손에 꼭 쥐어져 있던 고통의 꽃다발. 병든 천둥이 쇠북 치는 창문. 피묻은 소년이 묻힌 모래 구덩이. 謹弔(근조)와 크리스마스 카드. 철탑 위로 올라간 낯설고 검은 짐승. 저 뜯기고 해어진 날들이 내 불결한 마음의 먹장구름 아래로 내던진 회중시계일까. 나는 투덜대며 말하는 죄를 컵에 담아 마신다. 그가 왔다. 길 끝의 작고 누추한 방을 향해 차례로 켜지는 저녁 가로등처럼. 나를 똑똑 두드리는 그는 누구인가? 

나는 가슴아픈 사랑을 한 번도 마중나간 적 없다.

그러나 그가,

석유에 젖은 뺨 같던 내 몸에 붉은 성냥을 그어댔다.

'' 카테고리의 다른 글

아름답고 멋지고 열등한, 황병승.  (0) 2018.03.05
나쁜 꿈, 김하늘.  (0) 2018.03.05
식후에 이별하다, 심보선.  (0) 2018.03.05
제목없음  (0) 2018.03.05
제목없음  (0) 2018.03.05
공지사항
최근에 올라온 글
최근에 달린 댓글
Total
Today
Yesterday
링크
TAG
more
«   2024/04   »
1 2 3 4 5 6
7 8 9 10 11 12 13
14 15 16 17 18 19 20
21 22 23 24 25 26 27
28 29 30
글 보관함